어떤 책을 읽다 보면 이 작가는 왠지 나랑 비슷한 사람일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작가 코맥 매카시가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는 언제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코맥 매카시를 꼽아왔다. 이 글을 쓰는 오늘, 그가 별세하셨다고 들었다. 89세까지 사신 거면 나름 천수를 누리고 가시는 것이긴 하지만 그의 새로운 소설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는 소식에 아쉬움도 느껴진다.
코맥 매카시를 알게 된 계기
코맥 매카시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2007년이었나, 2008년인가 그럴 것이다. 그 당시 서점 싸돌아 다니기 좋아하던 나는 동네 서점을 돌아보며 책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떤 눈에 띄는 책이 하나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다름 아닌 <로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출판사에서 그 책의 광고문구는 기똥차게 지어놨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광고 문구가 다름 아닌 '감히 성서에 비견된 소설!'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오만한 문구에 그 당시 호기심이 생겨 그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 작은 계기가 나를 코맥 매카시의 팬으로 만들었다.
코맥 매카시의 문체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 따옴표를 안 붙이는 특이한 문체(심지어 느낌표도 안 붙인다.), 뭔 소리인지 살짝 곱씹어 봐야 하는 시적인 문체가 처음엔 상당히 적응이 안 되었다. 근데 참 특이한 게 나 자신은 책을 놓지 못하고 계속 읽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럴 수 있었나 생각해 보면 그 특유의 건조한 느낌에 매료가 되었던 것 같다. 코맥 매카시 소설의 내용들은 다크하고 우울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 분위기에 맞게 문체를 조정해서 소설내용과 어우러지게 만드는 그의 능력에 빠져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시에는 따옴표가 붙어 있지 않다. 덕분에 시는 대체적으로 활기찬 분위기보다는 정적이고 건조한 분위기를 띌 때가 많다. 약간 그런 느낌을 코맥 매카시 소설에서 받는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코맥 매카시 소설 안에서 나를 발견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그의 소설에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는 소설의 캐릭터들에게 너무 빠져든 것도 있다. 그의 소설 <핏빛 자오선>, <국경 3부작>, <로드> 등을 보면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미 있는 사람'들의 여정을 다룬다. 그런 캐릭터성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사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세상 인간들은 내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물어뜯으려 하고, 사기를 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런 놈들이 많다고 해서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할까? 당연히 그건 아니 될 일이다. 아무리 세상이 요 모양 이래도 그런 놈들과 똑같은 부류가 되는 건 나의 인간으로서의 품위가 허락하지 않는다. 설령 지옥에서 살아갈지언정, 여러분은 끝까지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서 남을 용기가 있는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은 내가 간혹 엇나가고 싶어 질 때마다 나를 바로 잡아주는 파수꾼이 되어 주었다. 소설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 이 세상에 누군가는 나를 이해해 주고 있어 위로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은 나 자신을 아주 가까이서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코맥 매카시도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산 것이 아닐까 싶다.
코맥 매카시의 삶
소설 이외에도 코맥 매카시의 삶 자체도 나에겐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엄청 화려한 삶을 산 건 아니다. 뛰어난 소설가지만 그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나이 60 즈음이 되어서였다. 그 이전까지는 이빨 닦을 치약이 없어서 무료로 나눠주는 샘플 치약에 의존하기도 했고, 집에 수돗물이 안 나와서 호숫가에 가서 샤워를 하기도 하였다.
그가 엄청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는 중산층 집안의 안정된 길을 택하지 않고, 소설가의 길을 택하였다. 아마 이 과정에서 그는 부모님과도 많은 갈등이 있었을 거라 추정된다. 어쨌든 고된 길을 선택한 그는 소설의 작품성은 평단으로부터 인정받았지만, 대중적인 인기와는 오랫동안 거리가 멀었다. 그 과정에서 심한 가난, 생활고에 시달린다. 아마 인간관계도 순탄치 않았으리라.
보통 사람이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 평정심이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코맥 매카시는 소설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게 된다. 심지어는 강연이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도 시크하게 거절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코맥 매카시의 이런 삶이 참 미련하다고 느꼈었었다. 그냥 약간 조금 타협해서 더 편하게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저버리지 않았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알았고, 거기서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주변 환경에 굽히지 않았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예술가의 삶을 살아나갈 용기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 자신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면 타인의 시선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참 강한 멘탈을 가진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나 자신은 결과가 어찌 되든 어느 것 하나에 진심으로 마주하고 전부를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코맥 매카시의 삶을 보며 이 겁쟁이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R.I.P
이렇듯, 지금까지 코맥 매카시의 소설, 그리고 작가 그 자신도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하는 존재가 되어왔다. 이제 코맥 매카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들, 그의 삶의 궤적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코맥 매카시의 마지막 소설들이 곧 번역될 예정이라는데, 빨리 읽고 싶다. 좋은 소설들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맥 매카시 작가님. 이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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