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인 코맥 매카시라는 분이 있는데, 이번에 이 코맥 매카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소설 ‘로드’를 읽고 이 할아버지의 팬이 됐다. 스토리는 물론이고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 따옴표를 안 붙이는 개성적인 구어체 대화문 등등이 묘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 사람의 소설을 읽으며 뭔가 묘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일까? 어쨌든 그냥 가슴 한구석이 짠하고 눈물이 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모두 다 예쁜 말들, 핏빛 자오선, 국경을 넘어 등등의 소설들을 읽게 되었다. 심지어 코맥 매카시 원작의 영화들도 찾아서 보곤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코맥 매카시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유난히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에 나오는 그 모든 소년들이 정글과도 같은, 각박하고 더러운 세상에 치열하게 맞서 나가는 장면들이 그 모든 소설에서 연출된다. 이 거대한 악으로 가득 차있는 세상에 비해 이 소년들은 너무나 연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힘껏 맞선다. 그들은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뜯기고, 찢기고, 상처입기도 한다.
왜 하필 ‘소년’일까? 코맥 매카시가 하고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 이런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것일까? 내 생각엔, 소년은 ‘순수함’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소설 속의 소년들은 하나같이 의롭고, 선하다. 더럽고 사악한 세상 안에서도 그들 자신의 올바른 신념을 지켜나간다. 오히려 어리기에, 세상을 잘 모르기에 가능할 수 있는 그 ‘특권’을 그들은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막상, 그들의 결말이 행복하게 끝나는 경우는 없다. 어느 소년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코맥 매카시는 그의 소설들이 시종일관 풍기는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처럼, 마지막도 대체적으로 우울하게 끝난다.(단, '로드'에서는 그래도 약간의 실오라기 같은 한줄기 희망이 느껴진다.) 코맥 매카시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일종의 회의를 느끼는 걸까?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를 찾기는 국내에서 힘든 듯하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 그 작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 노인네 마음속에도 한 가닥 ‘소년의 감성’ 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도 ‘순수’를 간직함으로써 상처를 받았기에 그것을 소설로서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다면 소설들의 결말을 비관적이게 끝내는 이유는? 착하게 살면 손해만 보고 사니 그렇게 살지 말란 말인가? 그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는 걸까? 그러나, 코맥 매카시가 그렇게 비관적인 교훈이나 전하자고 이 소설들을 썼을 거란 생각은 안 든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을 정말 주의 깊게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비록 순수함을 간직함으로써 찢기고 상처 입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간직하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그들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들은 아름답다. 그뿐이다. 그 미묘한 느낌을 나의 글 실력으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렇다.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다.
오히려 반대로 코맥 매카시는 이 소년들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넘쳐나기를 고대하며 소설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 맑고 깨끗함이 처음엔 미약하나, 점점 커지기를 고대하며.. 비관으로 낙관을, 우울함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오히려 표현하고 싶었던 것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나 역시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이 추악함으로 가득한 세상 안에서도 한줄기 순수함을 끝까지 간직하고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남게 되기를, 세상 모두가 사악해진다 하더라도 의로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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