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기 전에 발생하는 발표를 망칠까 봐 하는 두려움.
지나가는 맘에 드는 여자에게 마을 걸기 전의 거절당할까 봐 하는 두려움.
직장면접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전쟁터 나가기 전의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는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낯선 곳에 와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열심히 준비한 시험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괜히 나섰다가 개망신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말아먹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기타 등등..
두려움이란 놈은 대부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를, 불확실한 미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는 과거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하다. 과거에 두려움을 만들어 낸 무언가, 사건 사고 등이 다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망상의 노예가 되고 만다. 사실상 높은 정신적 경지를 갖추고 있지 않은 이상, 두려움이란 놈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세상의 온갖 때가 묻은 어른들 중 일부는 아무 걱정 없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미덕을 그때서야 알아채기 시작하기도 한다. 온전히 현재 속에 사는 어린아이들로부터 배운다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한다.
두려움에 너무나 세뇌되어 버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흔히 사람들은 두려움을 없애려면 그것을 마주하고 맞서라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두려움을 자주 접함으로써 두려움이란 놈은 상당히 완화된다. 하지만, ‘맞선다는’ 말에 나는 묘한 위화감이 든다. 삶을 살면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힘들다. 아니, 아마도 불가능하다. 이런 두려움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외의 다른 두려움이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같이 길을 떠나는 친구로서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두려움이란 놈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그것을 넘어섰을 때 묘한 희열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두려움이란 놈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고 보면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삶의 권태를 없애줄 때 또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너무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중간의 삶을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 칼 융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온전한 자기실현이 가능해진다고.(여기서 그림자란 자기 자신의 인정하기 힘든,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일컫는다.) 두려움이란 놈은 사실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 두려움이 다시 우리를 찾아올 때, 팔을 벌려 이렇게 말해보자. 경쟁상대가 아닌 ‘함께할' 친구로서.. 어느 틈엔가 당신의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반갑다, 친구야.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렇게 와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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